김수영의 난해시의 교훈
최근에 김수영의 시 몇 편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이를 통해서 나는 김수영의 여러 시들이 보이는 난해성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를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교훈은 의미에 대한 특정의 태도를 뒤흔들어 놓는 데 있다. 하나의 단어가 어떤 고정된 의미--이것이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것은 이른바 중의법이라는 수사법의 존재가 말해준다--를 지시한다고 보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태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시를 읽으면 한 단어가 지날 때마다 그것에 하나의 의미를 대응시키게 되고 그리하여 시 전체의 의미는 이 대응되는 의미들의 연결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도가 크다고 생각되거나 아니면 그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의미에 '주제' 등등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시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좋은 시라면 살아있는) 짜임새 자체는 뒷전으로 밀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만이 시의 '영혼'과도 같은 것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김수영의 난해시에서는 이런 '영혼'을 찾기 어렵다. 일대일 대응의 태도로 접근한다면 한 줄 이상 읽는 순간 무슨 말인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의 난해성은 기본적으로 보통의 경우에는 한데 놓이지 않는 예상 밖의 단어들이나 구절들 혹은 문장들이 한데 놓이는 데서 온다(리비스의 말의 빌자면 'an unexpected collocation'이다). 즉 기존에서 없었던 관계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관계를 기존에 존재했던 의미로 자꾸 환원하려는 것이 이른바 일대일 대응의 태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원이 잘 성공하지 못 한다는 데 김수영의 난해시들의 '까다로움'이 있는 것이다.
김수영의 난해시들에 접근할 때에는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한 예상밖의 결합, 혹은 관계가 어떤 의미의 장(場)을 형성하는데 이 장은 거기서 기존의 의미들이 어떤 임계점과도 같은 상태에 처하여 거기서 새로운 의미의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동적이라고 보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를 '유동적인 의미의 장'을 구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장은 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짜임새를 '초월'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의 음악적 율동, 행과 연의 배열, 행가름, 단어들의 배열순서, 한 행의 길이 등등이 단어들의 통사적 구조(혹은 그 파괴 혹은 그로부터의 일탈)와 함께 의미의 유동성을 이룬다. 이 요소들의 모두가 서로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무리 사소한 요소일지라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어떤 하나가 다른 것을 '대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절대적 민주주의다.
나에게는 이런 비유가 떠올랐다. 일대일 대응의 태도--이는 재현의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로 난해시를 대하는 것은 보물이 묻혀있다는 것은 아는데 그 곳이 어딘지 모르는 것과 같다. 여기서는 보물지도가 필요하고, 보물지도를 지녔다는 자들이 필요하다. '유동적 의미의 장'이 함축하는 태도로 난해시를 대하는 것은, 묻혀있는 곳은 아는데--바로 시 자체이다--묻혀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찾는 사람들이 그러한 찾기의 과정에서 묻혀있는 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조금씩 창출하는 것과 같다. 찾는 사람들 서로의 협동 말고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김수영의 난해시가 주는 이러한 교훈은 적절하게 변경한다면 언어 전체에 해당되는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나는 여기서 의미에 대해서만 말했지 시가 주는 어펙트(감정, 정서, 느낌)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이 또한 앞으로의 과제이다. ♠
"우리가 시에서 특별하게 놀라운 '구체성'이 구현된 대목들--이 대목들에서는 운문이 생명력과 몸체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단어들의 배열을 읽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분석한 결과, 괴리되어 있거나 충돌하거나 대조되는 복합적 효과들이 공존하는 주목할만한 사례들이 산출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여기서 리비스가 말하는 것은, 시에서 의미가 장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과 아울러, 그 장은 마찰 혹은 충돌(friction)과 긴장(tension)도 일정하게 포함한다는 말이다. 김수영의 난해시에서의 '유동적인 의미의 장'이란 바로 이러한 마찰과 긴장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에 해당한다.
리비스가 위의 문장에 이어서 간단한 예로 드는 것은 다음의 행이다.
"Lilies that fester smell far worse than weeds,"(잡초들보다 더 심하게 냄새를 곪게하는 백합들,)
여기서 리비스는 본래 고기가 부패되는 데 사용되는 'fester'라는 단어가 여기서는 하얗고 향기로운 순수의 상징에 사용됨으로써 명백하게 괴리된 연상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고 한다. 리비스는 더 복잡한 얘도 들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